[회상:]
내가 얇은 날개를 펼칠때 불씨하나로 내 삶까지 망친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삶을 회고 하는날 이란
죽음을 과거형으로 이미 영혼은 빛을 향해 가고 있을때
비로소 내 삶을 회고 하는듯하다.
나는 이미 내 삶을 회고 하고 있다.
되짚어 보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형식으로 기억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은 자기가 위대한 업적을 쌓아놓을수록 죽어서도 그가치가 올라가는데
그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이였는지 모르겠다.
나자신을 위해서 이 인생을 살고 있었는지
아님,또다른 누군가를 만족 시키기 위한 삶이였는지..
자살한 사람들 모두가 아니,젋은 생을 살다간 그들 모두가
이 인생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만족할까.
분명한건 우발적인건 없어야 한다.
여태까지 고민해왔더래도 결정은 한순간 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자신은 어릴떄부터 죽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해치고 싶단 의미는 아니였지만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제사때마다
엄마가 우리가족 잘부탁드린다는 말을 한것이 화근이였다.
죽은 사람에게 뭘 바라는건 왠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내버려두고 평안한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면 안되나.
늘 이렇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까지 뭘 부탁한다.
그리고 빌어먹을 형식은 별 도움이 안된다.
내 손금을 보면 늘 가늘고 길게 산다는 평이 많았는데
왠지 미친 락스타 처럼 한 생을 전설처럼 살다가 굶고 짥게 가버린 그들의삶이
부럽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물론 과거형이다.
그들은 나이가 먹어서도 추태를 부릴까 걱정된건지
아님 귀찮아서 ?
아님 어떻게 하다보니 육신은 이미 땅밑에 있고 혼만 남아있었던건지
뭐가 잇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행복을 느낄때에는 절대 죽음에 관해 생각도 단어도 말하지 않게된다.
더욱이 스트레스가 있다해도
그걸 커버할만한 사랑을 느낄때면
미소를 짓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나비처럼 산다는건 우아하고 보기에는 좋지만
늘 결말은 아무도 임종을 지켜봐주지 않고
어쩌면 아스팔트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누군가에게 밟히는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세상이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는걸 증명하는걸지도 모르겠다.